김상욱 의원은 14일 이틀째 1인 피켓 시위를 이어가며, 의원총회에 참석하지 않고 국회 문 앞에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그는 시위 도중 살해 협박과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탄핵 표결 때까지 1인 시위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피켓 문구와 메시지
김 의원은 피켓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적어 국민과 동료 의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지금 입은 옷은 계엄 해제 표결 때 입었던 옷입니다. 선배 동료 의원들께 계엄 해제를 간절히 바랐던 그때 그 마음으로 탄핵 찬성에 나서줄 것을 참담한 심정으로 호소합니다. 이대로는 보수가 전멸합니다. 보수의 배신자는 윤석열입니다. 탄핵 찬성으로 국민께 진심으로 반성하고 보수의 가치를 기준으로 다시 처음부터 국민의 신뢰를 얻어 제대로 된 보수당, 제대로 된 진짜 국민의힘을 만들어야 합니다.하루를 하더라도 국민을 위한 의무를 다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윤상현과의 노상 10분 토론
시위 첫날, 김 의원은 동료 의원들과 악수를 나누며 소통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윤상현 의원과 즉석에서 10분간 탄핵 찬반 토론을 벌였습니다. 두 사람은 탄핵안에 대한 찬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가운데, 길거리에서 직접 의견을 주고받으며 정치적 논쟁을 이어갔습니다.
김상욱의 주장: 탄핵 찬성 측
- “윤 대통령이 자격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의 문제인 것 같다”라며,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 자격을 의심케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이 나라의 왕은 대통령이 아니라 헌정질서”라며, 헌정질서를 무장군인을 통해 무너뜨리려 했던 시도는 탄핵의 이유라고 주장했습니다.
- “보수의 배신자는 윤석열 대통령”이라며, 탄핵 찬성을 통해 보수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 김 의원은 이재명 대표와 관련된 문제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후자는 헌정질서를 위협하는 국가적 범죄라고 지적했습니다.
윤상현의 입장: 탄핵 반대 측
- “사실 비상계엄 나도 동의 안 한다. 정당화될 수가 없다”면서도, 헌정질서에 대한 논의는 헌재에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탄핵은 마지막 수단이어야 하며, 지금은 대통령의 해명과 국정 정상화가 우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 윤 대통령의 탄핵은 보수 재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민주당에게 정권을 넘길 위험성을 우려했습니다.
윤상현 의원, 워터게이트 사건 언급
워터게이트 사건 개요
닉슨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대한 도청 사건으로 시작된 정치 스캔들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불법 행위를 은폐하려다 사임으로 이어진 사건입니다.
워터게이트 사건: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큰 스캔들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부터 1974년까지 미국의 정치와 사회를 뒤흔든 대규모 정치 스캔들입니다. 이 사건은 미국 역사상 대통령이 처음으로 사임하게 만든 사건으로,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의 권위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습니다.
사건의 시작: 워터게이트 침입
1972년 6월 17일, 워싱턴 D.C.에 위치한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본부에 도둑이 침입했습니다. 이들은 도청 장치를 설치하고 중요한 문서를 촬영하려 했습니다. 체포된 다섯 명의 침입자는 닉슨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을 담당하는 공화당 재선위원회(CREEP)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사건의 전개: 은폐와 폭로
체포된 이들의 조사 과정에서, 닉슨 행정부가 이들의 행위를 숨기기 위해 조직적으로 은폐를 시도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를 폭로한 주된 역할은 언론과 내부 고발자들이 맡았습니다. 특히,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 밥 우드워드(Bob Woodward)와 칼 번스타인(Carl Bernstein)이 익명의 내부 고발자인 “딥 스로트(Deep Throat)”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깊이 파헤쳤습니다.
닉슨 대통령과 그의 참모진은 수사를 방해하고 관련 증거를 숨기려 했으며, FBI, CIA, 법무부를 동원하여 진실을 은폐하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핵심 증거: 녹음 테이프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결정적인 증거는 백악관에서 녹음된 닉슨 대통령의 대화 테이프였습니다. 이 녹음은 닉슨이 침입 사건과 관련된 은폐를 지시한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닉슨은 처음에는 녹음 테이프의 제출을 거부했으나, 결국 대법원의 명령에 따라 이를 공개해야 했습니다.
닉슨의 사임
녹음 테이프가 공개된 후, 닉슨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 처했습니다. 하원 법사위원회는 닉슨에 대한 탄핵안을 승인했으며, 상원에서도 탄핵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습니다. 1974년 8월 8일, 닉슨은 대통령직 사임을 발표했고, 다음 날 사임이 공식화되었습니다. 닉슨의 사임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 사임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제럴드 포드의 사면
닉슨이 사임한 후, 부통령이었던 제럴드 포드(Gerald Ford)가 대통령직을 승계했습니다. 포드는 취임 후 한 달 만에 닉슨에게 전면적인 사면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지만, 포드는 이를 통해 국가의 분열을 종식하고 정치적 혼란을 줄이고자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건의 의의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 정치와 민주주의 시스템에 큰 교훈을 남겼습니다. 이 사건은 언론의 중요성과 권력의 견제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대통령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원칙을 확립했습니다. 또한, 미국 국민은 정치적 투명성과 윤리성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단순한 정치 스캔들을 넘어, 미국의 민주주의와 권력 분립 체제를 시험하는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닉슨 대통령의 사임은 권력 남용에 대한 대가를 상기시키며, 오늘날에도 정치적 부패와 관련된 논의에서 중요한 참고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윤석열과 공통점과 차이점
공통점:
- 두 사건 모두 권력의 남용과 이를 둘러싼 정치적 책임 논란이 중심에 있습니다.
- 언론과 여론의 적극적인 역할이 사건 해결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차이점:
- 닉슨은 탄핵 절차가 본격화되기 전 자진 사임했지만, 윤 대통령은 탄핵에 맞서 싸우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단순한 정치 스캔들을 넘어, 미국의 민주주의와 권력 분립 체제를 시험하는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닉슨 대통령의 사임은 권력 남용에 대한 대가를 상기시키며, 오늘날에도 정치적 부패와 관련된 논의에서 중요한 참고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윤상현 의원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언급한 이유는 탄핵이라는 정치적 대응이 국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꺼냈다고 하기엔, 갑자기 1인 시위하는 후배 의원을 응원해 주지 못할 망정 "워터게이트 사건"이란 뜬금없는 궤변을 늘어놓았는지 필자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으며, 이 날 김상욱 의원은 민주주의와 보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탄핵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맞섰습니다.
왜 옳은 생각을 장착하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추운 길거리에 나와야 하며, 배신자 프레임을 씌우고, 자신의 뜻과 다르다고 당론을 따르지 않는다고 일부 의원들이 왕따를 하는 상황은, 자유 의사의 부족을 느끼게 되는 국민의힘의 현실은 여전히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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